[R]한글 동요로 우리말 지켜낸 영주 강신명 목사 / 안동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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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 커 ▶
내일은(오늘은) 올해로 105주년을 맞은
3.1절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한
경북 북부에도 다양한 방식의 투쟁이
존재했습니다.
영주 출신 故강신명 목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어린이를 위한
한글 동요집을 펴내
우리말 보급에 앞장섰는데요.
김서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영주시 평은면 내매마을의 한 교회.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상자를 열자 끈으로 엮은 얇고 낡은
책자 한 권이 보관돼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이 마을 출신 故강신명 목사가 평양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중 펴낸 어린이 동요집
'새서방 새색시'의 국내 단 하나뿐인
초판본입니다.
직접 그려낸 22곡의 악보,
반듯하게 쓴 한글 가사가
80년이 넘는 세월에도 고스란히 남아
최근 한국기독교사적 유물로 지정됐습니다.
◀ INT ▶윤재현 / 영주 내매교회 목사
"강신명 목사님의 당시에 부목사를 하시던 강윤구 목사님이 본인이 보관하기에는 너무 큰 거다, (기증받은 뒤) 보는 분마다 모두 다가 '너무 희귀본이다'"
뒷표지에 적힌 발행인은 '윤산온',
일본이 강요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추방된
미국인 선교사의 이름입니다.
강 목사가 당시 평양신학교 교장이었던
윤산온을 비롯해 기독계의 지원을 받으며
동요집을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 전화 INT ▶강영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식민지 시대는 국어가 일본어라서 학교에서도 조선어를 배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주일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해줬고 또 어린이들을 모아서 일상생활에 대한 수칙, 위생 관념 이런 것들을 교육을 해줬으니까"
강 목사의 집안 배경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는 '한글 목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故강병주 목사,
조선어학회의 유일한 목사 위원이자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던 독립운동가입니다.
영주 내매교회와 함께 운영된 내명학교의
초대 교장이기도 했습니다.
◀ INT ▶윤재현 / 영주 내매교회 목사
"내명학교라고 말하면 이 (영주)지역에서 최초로 근대 보통 학교죠. (강병주 목사의)그 아드님이 강신명 목사님, 내명학교의 9회 졸업생입니다."
강 목사는 동요집 '새서방 새색시'에서
그치지 않고, 이 동요집을 기반으로
1936년, 일제강점기 조선 동요를 집대성한
'아동가요곡선 300곡'까지 편찬합니다.
이번에는 일본의 검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초판본이 '반일 감정'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일본 총독부로부터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강 목사는 곡 일부를 변경해 재판본을
내고, 다시 원곡을 살린 수정증보판까지 내면서
귀한 한글 동요집을 지켜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지켜낸 곡은 해방 후까지 남아,
강 목사 음성으로도 보존돼 있습니다.
◀ SYNC ▶故강신명 목사
---------1972년 2월 25일/지인 약혼식 피로연
"'새서방 새색시'입니다. 깟닥깟닥 새서방 애기 새서방 왈랑절랑 말타구 장가 가누나"
강 목사의 한글 동요집은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교 밖 어린이들의
음악교재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이 강화됐던 1930년대,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방 후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우리말 교재였습니다.
MBC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차영우, CG 황현지)